2002년, 아프리카 중부에 위치한 챠드(Chad) 에 살았을 때, 집안 일을 도와주던 아줌마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쥴리엣, 나이는 미상이었습니다.
흑인들은 피부결이 좋아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젊어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쥴리엣 아줌마도 겉으로 봐서는 그다지 늙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쉰은 족히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물어보면 항상 자신이 삼십대라고 했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늘 삼십대라고 고집하는 것은 아닌지 조금 의심스럽긴 했습니다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신경쓰지 않았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쥴리엣에게 결혼한 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딸에게 자녀들까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관절 세상 어디에 삼십대 할머니가 다 있단 말입니까?
갑자기 쥴리엣의 실제 나이가 궁금해진 저는 부드럽게 다가가 살살 물어보았습니다.
"쥴리엣! 당신,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었소?"
"나요? 나, 삼십대 인뎁셔"
"아~~ 그건 다 아는 거고... 정확하게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흠;;; 아마 서른 다섯쯤 되었을거요."
"그래요? 그럼 딸은 몇살인데?"
"우리 딸? 우리 딸은 올해 서른살인데... 그건 왜요?"
"헉;;; 그럼,,, 당신은 다섯살에 아이를 출산???? @.@"
화들짝 놀라서 나른하던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기함을 했지만
쥴리엣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척 하고 그냥 벙긋 웃고만 말았지요.
아마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쥴리엣의 나이는 그냥 서른 다섯에 딱~ 멈춰버린 건 아닌지...
아프리카인들 중에는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인간은 아프리카인이건, 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자신이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몇 월 몇 일에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이 유사이래 단 한 명도 없질 않습니까.
태어나면서 스스로 시간을 의식하는 인간은 없으니까요.
단지 자신의 생년월일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로부터 전해 듣는거죠. ^^
아프리카인들은 달력과 시계도 없을 뿐더러 있다 해도
세월이 흘러가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도 똑부러지게 언제 출산했는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기억하기도 어려운가 봅니다.
물론 병원이 아닌 가정에서 재래식 방법으로 자녀를 낳으므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데다
주변에서 날짜를 알려주거나 기억해 주는 간호사 같은 사람이 없으므로 이런 현상이 더욱 가중됩니다.
그들은 태어나면 그냥 살고 병들어 명을 다하면 그냥 죽는 삶을 사는,
문명의 혜택과는 영 동떨어진 안타깝고 측은한 인생들입니다.
중부 아프리카의 생활을 마치고 2005년에 북아프리카 모로코로 이사를 왔습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나라들 중에서 유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말하자면 <개화>된 나라라고 할 수 있죠. ^^
달력과 시계가 없는 집이 없고 일부 극심한 산골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시책으로 집집마다 TV와 위성안테나가 보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명과 가까운 모로코에도 자신의 생년월일을 모르는 사람이 많더군요.
에이샤(Aicha)라는 이름의 이 분은 올해 만 34세의 미혼여성입니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데다 가정 형편이 무척 어려운 여성입니다. 더구나 일주일에 서너번씩 간질 발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그나마 일하던 곳(일당 6천원)에서도 해고되었습니다. 비용이 부담스러워 약도 복용하지 못하므로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이젠 일거리도 찾기 힘들고 친구도 없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그녀를 알게 된 우리는 그녀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 조금이라도 그녀의 삶에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매달 지출되는 약값의 일부를 도와줄까, 취직을 알선해 볼까, 문맹의 상태를 벗어나게 해 줄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았지만 섣불리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존심 상할까봐 좀 더 친해진 후에 도와줘야 겠다 싶어 많이 망설였습니다.
다행히도 며칠 전 만났을 때 매달 약값을 지원하겠다는 우리의 제안을 비교적 담담하게 수락하더군요.
그녀와 많이 친해진 저는 그녀에게 결혼은 했는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등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나이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신분증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에 해당) 에는 1975년 생으로 나와 있다고 했습니다. 궁금해진 저는 신분증을 보여줄 수 있겠냐고 했죠. 그녀의 신분증을 본 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년월일에 달랑 1975년만 나와 있었거든요. 사실 1975년도 정확하진 않습니다. 대충 그 때쯤 태어났겠거니 하고 기재된 것이지요.
보통 일이 이쯤 되면 우리나라 같으면 임의로 날짜를 정해서 생년월일 난을 채웁니다. 이렇게 생년월일 난에 연도만 나와 있고 달과 날짜가 공란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더욱 쓰라립니다.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얼마나 궁금할까요? 그리고 자신의 나이가 지금 몇 살인지도 얼마나 궁금할까요?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한 끼 밖에 못 먹고 의료혜택을 못 받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짐승처럼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감사가 넘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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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와 함께 떠나는 아프리카 사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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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신분증에 웬 한글이....
2009/10/16 00:19불어 단어의 이해를 돕기 위해
2009/10/26 06:55제가 포토샵으로 작업을 좀 했습니다.
한글을 넣지 않으면 무슨 단어인지 알기 어렵지 않을까요? ^^
안녕하세요 사라님. ㅎㅎㅎ;; 이런 상황은 남미에서도 비슷합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이렇게 일부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볼리비아 같은 나라에서도 출생기록 자체가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출생기록이 없으니 혼인 기록은 더더욱 없죠. 아이들 낳고 손주까지 보아도 살았다는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나도 신원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답니다.
2009/10/26 00:01문명의 혜택을 받고 지내는 것을 좋다고 해야할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잘 판단이 안 설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참, 위의 올드보이님. 모로코 신분증이니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사라님이 한글로 붙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ㅎㅎㅎ
어머나 세상에...
2009/10/26 06:57남미도 그런 상황이군요.
한평생 자녀낳고 손자까지 보고 살아도
살았다는 기록이 없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
안타깝긴 한데 굳이 짐승처럼..이라고 표현한게 걸리네요
2009/10/30 12:51네. 그 표현이 마음에 걸리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2009/11/02 08:28그런데 정말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가보면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딱한 상황이거든요.
허울만 인간이지 거의 짐승처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라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느껴지네요.
2009/11/02 05:17더불어 함께 하는 기회를 좀 더 만들도록 노력 해야 겠습니다.
좋은글 읽고 새롭게 각성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11/02 08:27제 글에 공감하셨다는 것은
casablanca 님도 마음이 순수하고 선량하시다는 증거입니다.